<사설>-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소신인지

입력 : 2025-11-04 20:42:29
수정 : 2025-11-04 20:42:29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쏟아지듯 하고, 하루하루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서 ‘어쩌다 지도층의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 사안들까지도 정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념이나 신념도 모호해 어지럽기 그지없는 실정’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을 촉진하는 것이 지도계층이 해야 할 임무인 듯 보여지는 최소한의 정의(正義)마저도 상실한 듯한 일들이 난무하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정의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정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정답처럼 말하는 공정이, 정말 ‘도리의 공정’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상황들이 난감함은 오로지 국민들의 몫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잘못된 ‘조직십’을 발휘하는 사례들이 너무 빈번해 누구나가 이해할만한 상식적이고 도리적 인지를 한번 쯤은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도 요란스럽게 정권은 바뀌었지만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런 위험한 요란함을 직면했고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 복잡함에 맞섰던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적인 신념에 의해 만들어진 맹신이 빚어낸 현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학습을 통해, 또는 가족과 사회의 조직이라는 질서에서 배웠던 최소한의 정의(正義)는 참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말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과 악’의 기준이 뒤바뀌고 정의가 왜곡되는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직면한 현상에 대해 ‘친분이 아닌 사실적인 정의’에 의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직면한 이 혼란에 건강한 사고력을 움직여야 하는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행동해야 하는 필요를 “왜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혼란을 격고 있는가?” “아니 왜 더 복잡하고 더 혼란스러운가?”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급변하는 문명과 문화가 공짜가 아니라, 누군가의 정의로운 참여와 목숨 건 의지를 행동으로 해 만들어진 사회에 살고 있고, 미래 무엇이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정서적인 바탕이 되어야 할지에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학연·지연에 의해서도 아니고, 내가 소속된 단체의 목적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신으로서 건강한 사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번 태어나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너무도 많은 일을 겪어내고 있는 작금의 사태들에 왜 우리 국민이 고스란히 이 두려움을, 이 혼란스러움을 받아 내야 하나를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이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젊은 인파들은 생업을 뒷전으로 미룬 소신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필자처럼 자판을 두드리며 방송을 통해 혀나 차는 ‘무임승차 하는 것 같은 마음’에 괜한 자격지심에 마음 한구석의 정의가 촉진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늘 어떤 일이 생기고 나면 결정되는 고통스런 현실의 몫은 지난 겨울 차가운 길바닥에서의 ‘소신 정의’를 행동한 사람이나, 무임승차한 것 같은 미안함을 갖은 이들이나 똑같이 맞는 ‘풀뿌리 민주주의’라 말하는 문명이고, 문화이고, 사회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과 악의 기준이 뒤바뀌고 정의가 왜곡되는 상황들에도 직면해 있는 현상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친분이 아닌 사실적 정의로운 판단에 의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합리적이지 않은지는 다 알고 있다는 막연한 믿음은 있을테니까 우리 국민들이 차가운 길바닥 정치에 쓰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