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얼마 전 손녀딸들과 2021년 7월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에 다녀왔다. 북부지역 첫 국립박물관으로 15개 수장고에 약 100만 점 이상의 민속자료와 아카이브 자료를 볼 수 있다. 이 땅에서 삶을 이어온 조상들의 의식주, 사회생활, 풍속 등 삶의 지혜가 담긴 자료들과의 소중한 만남이었다.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목숨이 경각에 걸린 6.25 전란 중에도 민속자료를 지켜낸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백자 그릇에 열무김치와 보리밥을 담아 된장·고추장으로 비벼 이웃들과 나누는 정이 넘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을 해외로 돌려보니 29개국 박물관·미술관 801곳에 선물했거나 반출 경위가 불분명한 문화재가 24만 7718점에 이른단다. 일본이 10만8000여 점, 미국이 6만5000여 점, 독일이 1만5000여 점, 중국이 1만4000여 점, 영국이 1만2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방치되거나 훼손이 심한 26곳의 미술관·박물관 소장품 122점을 살려냈다. 본드로 붙여 놓은 청자를 복원하고, 일본 유물로 오해한 그림을 우리 전통 기법으로 살려낸 쾌거도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미술관의 ‘해학반도 병풍’은 복원 후 자체선정 ‘10대 소장품’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한단다. 하와이 호놀룰루 미술관의 ‘계회도’는 등재번호조차 없었다. 1586년 작으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수량이 적었는데 발견 자체가 큰 사건이란다.
우리 민족은 금속활자와 한글 창제 등 창조력과 재창조의 복원기술이 뛰어난 나라이다. 희망 메시지를 품고 나라 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 좋은 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헐뜯고 미워하며 죽기로 싸우나? 같은 자리에 앉아 등을 돌리고 얼굴도 안 보고 악수도 안 하나? 유치원생도 어제 한 약속을 오늘 깨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보는데도 소리 지르고 싸우나? 혈세가 아깝고 시청료 내고 보기 부끄럽다.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좀 먹고 곰팡이 슬어 구멍이 숭숭 뚫린 우리 양심을 복원하자. 나라 사이에 국경은 있지만 사람 사이에는 장벽이 없다. 문화재 복원기술로 구멍 뚫리고 비틀린 양심을 수술하자. 문화유산이 약탈과 강탈 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 비책은 시민 각자의 깨어있는 책임의식에 있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꿔줄 기대 하지 말고 지금 우리 마음 안의 정치를 바꿔야 한다.
유일한 ‘치료제’는 누구 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편이라는 자각이다. 동쪽은 서쪽과 균형을 이룬다. 남극은 북극과 한 팀이다. 문화재복원 기술로 상대를 존중하는 국민성을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