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각본 없는 감동 드라마 페어플레이」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자신의 한계’라고 했다. 사토 토미오를 비롯한 의학자들은 사람은 말하는 버릇으로 노화하고, 병도 말하는 버릇으로 고쳐진다고 한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몸의 주인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고 한다. 자신의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말하는 본인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먼저 말을 하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올 한해 무슨 말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신사도, 기사도 정신, 페아플레이 같은 말을 살려내야 한다.
스포를 넘어 어디서든 통하는 세계 공통 언어가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그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해질 수 있다. 페어플레이는 바른 인성을 기르기 위해 19세기 영국 퍼블릭스쿨(Public School)에서 시작되었다.
“페어플레이 없는 경기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정정당당을 가르쳤다. 페어플레이는 시대와 세대, 국경을 초월한 품격으로 ‘스포츠 철학’도 등장했다.
페어플레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소중한 시간과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패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현대의 검투장’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웨스트햄과 에버턴의 1:1의 상황. 웨스트햄에서 쏘아 올린 공이 에버턴의 골문으로 날아간다.
에버턴의 골키퍼가 쓰러진 상황이라 머리만 대면 경기가 끝난다. 공격수는 헤딩 대신 손으로 공을 잡아 경기를 중단시켰다. “축구는 골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그 한 마디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심판도 상대편 선수도 관중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페어플레이는 성문화된 모든 규칙을 넘어서는 인간존중 정신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국회에는 다양한 위원회가 있다. 각 위원회의 위원장은 사회자이다. 페어플레이를 하도록 돕는 진행자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발언권을 빼앗고 퇴장시킨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볼 수 없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실종된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민 낯이다.
스페인 국제 육상대회에서 비교 불가의 1등 선수가 결승점을 착각하자 2위 선수가 알려주고 “나는 떳떳한 2위를 하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을 증명했다. 우리는 떳떳한 시민으로 국민 앞에 떳떳한 대표를 보고 싶다.
일제 시대의 손기정 선수, 바르셀로나의 황영조 선수가 육상의 꽃인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 그런데 우리 마라톤의 현실은 엘리트 선수와 아마추어의 기록 차이가 1분이란다. 페어플레이를 망각하고 담합하여 슬렁슬렁 뛰기 때문이란다. 불법에 침묵하면 우리 집 화단이 망가진다.
몇 해 전 스위스 국민들은 매달 300만 원 씩 기본소득을 주자는 제안과 최저임금인상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그러나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줄기세포연구 등 차세대 먹거리법안은 통과시면서 “우리는 내성적이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즉흥적이지 않으며 교육 수준이 높다.”고 자부했단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나라 망칠 포퓰리즘을 막은 사례이다.
2025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손자 손녀들에게 페어플레이의 희망 메시지를 선물하여 밝고 희망찬 새해에는 페어플레이 축제를 열어야 한다.